아직은 옷깃을 여며야 하는 날씨
이른 새벽 골목에서 만난 영봉 아빠
“벌써 출근하시는가?”
“아빠도 일찍 출근하셨네!”
아빠의 리어카는 벌써 반은 차있습니다
박스와 부서진 플라스틱 소쿠리, 빈 병, 부서진 선풍기…
영봉 아빠는 뇌졸중으로 언어는 어눌하지만
쉼 없이 골목을 누비며 파지를 주우십니다
30분쯤 지난 후
아빠가 병원에 오셨습니다
벌써 고물상에 파지를 넘기시고
커피 한잔하러 오신 겁니다
“아빠, 어서 오세요. 김서영 다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빠는 허허 웃으시며
마스크를 벗고 커피 한 잔을 타십니다
“아, 좋다.”
_「김서영 다방」 중
평생을 아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다짐 하에 결혼도 하지 않고, 전 세계로 의료 봉사를 다니던 그녀가 둥지를 튼 곳, 원미동. 그곳에서 김서영 원장과 원미동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삶의 노래, 『원미동 연가』이다.
슬픔 속에 위로의 노래를!
『원미동 연가』는 총 3장으로 나뉜다. 1장은 ‘김서영 의원’에서 시작되는 원미동 사람들과의 만남, 2장은 병든 몸과 마음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 3장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별하는 마지막 이야기들을 담았다. 시와 산문을 결합한 글과 따뜻한 색감의 그림이 어우러진 85편의 이야기에는 삶과 죽음, 희망과 좌절, 환희와 고통 그리고 기쁨과 슬픔이 담겨 있다.
어디서 누구에게 맞았는지
시퍼렇게 멍든 얼굴로 병원으로 뛰어와
세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언니야! 오빠야가 때렸다!”
외치며 품에 안겨 울던 아이 어른
시장을 헤매다 먹을 것을 얻는 날이면
“언니야, 이거 먹어라!”
시커먼 손을 내밀던 아이 어른
때론 아무 이유 없이 간호사들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눈이 돌아가 펄펄 뛰던 그녀
원장실로 뛰어 들어와
“쟤들이 나를 무시했다 언니야!”
눈동자를 굴리며 씩씩거릴 때도
있는 힘껏 꼭 껴안으면
갑자기 순한 양이 되어
“언니야 미안타….” 하던 아이 어른
그녀에게서 풍겼던 냄새는 악취가 아닌
사랑 고픔, 관심 고픔…. 고픔의 냄새였건만
그녀의 고픔을 악취로 여겨 피하기만 한 세상은
그녀로 하여금 다시 오지 못할 길을 향해
몸을 던지게 만들었습니다
_「슬픈 그림 그리는 날」 중
2009년 2월, 부천시 원미동에서 개인 진료를 시작한 김서영 원장은 현재까지 원미동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몸의 치료를 위해 마음을 보듬고, 함께 삶을 공유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의사로서의 책무라 생각하고 행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 속에 수많은 사연을 담은 『원미동 연가』 『사랑해 풀꽃 이불 덮을 때까지』를 썼고,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꾸준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 볼리비아·파라과이·브라질·필리핀·중국·티베트 의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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