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의 한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여덟 살 때 가족과 떨어진 이중섭은 평양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런데 공부보다 그림 그리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어린 이중섭은 평양 인근에 흩어져 있는 고구려 고분 벽화의 매력에 빠져 유적 안에서 놀다 잠들기도 했습니다. 조용히 혼자 있는 성격이었던 그에게 그림은 좋은 친구가 됐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이중섭은 평양에 있는 학교에 떨어지고 오산에 있는 고등 보통학교(중등 교육 기관)를 다녔습니다. 마침 그곳은 유럽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돌아온 임용련* 선생님이 계신 학교였어요. 임 선생님은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 민족의 어려움을 알고 우리의 정신을 잃지 말 것을 가르쳤습니다. 훗날 이중섭이 남다른 민족의식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 것은 임 선생님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일본 도쿄문화학원으로 유학을 가게 된 이중섭은 일본 여인 마사코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중섭은 작은 엽서에 자신의 마음을 담은 그림을 그려 마사코에게 전하는데, 이 덕분에 많은 그림 연습을 하게 된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왔지만 북한과 소련군은 예술가의 그림 그리는 일에 지나친 간섭을 했어요. 어쩔 수 없이 이중섭은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 제주도 서귀포로 피난을 갔습니다. 이중섭은 다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소와 닭을 그렸고,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아이들도 그렸지요. 그러나 정작 몸과 마음은 가난으로 인해 영양실조에 걸릴 만큼 약해졌습니다. 그림을 그릴 재료도 살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중섭은 그림 그리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캔버스*가없으면 버려진 담뱃갑을 주워 담배를 쌌던 은종이나 합판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물감과 붓도 없어서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습니다. 이런 그림을 '은지화'라고 불러요. 은지화는 재료에 구애받지 않은 이중섭의 창의성을 잘 보여 줍니다.

하지만 어려운 생활을 견디지 못한 아내와 두 아들은 결국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서귀포에 혼자 남겨진 이중섭은 가족을 그리워하며 다시 만날 날을 위해 열심히 그림을 그렸어요. 이중섭이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에는 사이좋게 노는 어린이들의 행복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을 그림에 담았던 것이지요.

이중섭의 그림은 마치 동화처럼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대상의 특징을 잘 찾아 선 하나로 표현하고, 붓과 연필을 자유롭고 용감하게 사용했습니다. 선 하나로 대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중섭 그림의 매력입니다.

이중섭은 소도 즐겨 그렸습니다. 특히 흰 소를 많이 그렸는데, 흰 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불린 우리 민족을 상징합니다. 소의 크고 선한 눈망울을 본 적이 있나요? 이중섭은 큰 눈을 가진 흰 소가 힘겹게 싸우고 일하는 모습을 그려 그 안에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담았어요.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우리 민족의 역사를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임용련: 한국의 서양화가. ‘에르블레 풍경’과 ‘금강산’ 등을 통해 그의 뛰어난 색채 감각과 우수한 조형 능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캔버스: 유화를 그릴 때 쓰는 천.

이중섭이 제주도 서귀포에서 보내던 시기에 그린 그림입니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 무엇이 보이나요?

하얀 새를 타고 하늘을 나는 아이, 주렁주렁 과일이 열린 나무, 푸른 바다와 황금빛 모래사장에 누워 햇살을 즐기는 아이를 찾아보세요.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따사로울 것 같습니다. 모두가 먹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감귤과 푸른 바다엔 평화로운 낙원을 꿈꾸는 화가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 리젬 ‘교과서 속 현대미술 이야기’ (이지윤 글, 정현희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