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감독 창녕 우포늪서 북 콘서트 "고기 싸게 공급하는 공장식 축산, 인간에게도 재앙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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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대표로도 8년째 활동 중인 임순례 영화감독이 9일 오후 경남 창녕 '개똥이 마을책방' 마당에서 열린 <동물과 행복한 세상 만들기> 출판 기념 북 콘서트에 참석해 강연을 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고기가 되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엄청난 고통을 겪을 동물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사람도 살기 힘든데 무슨 동물복지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단지 우리에게 먹히거나 이용당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더 근본적으로는 육식을 줄이는 것도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공장식 축산이 인간의 건강뿐 아니라 지구 환경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니까요."

동물보호단체 '카라' 대표로 활동
아동 도서 '동물과 행복한 세상…'
'개똥이 마을책방'서 출판 기념회

"사람의 먹거리·흥미·실험 용도로
동물들에 극도의 고통·죽음 강요
값싼 사료 공급 하려 GMO 남용
인간 건강·지구생태계에 악영향"

그날은 '살충제 계란' 파문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하지만 그 위험성에 대해선 누군가는 계속 경고해 오던 중이었고, 단지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세 친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으로 유명한 임순례(57) 영화감독이 새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촬영하는 중에도 어린이를 위한 책 <동물과 행복한 세상 만들기>를 내고 우포 늪가 시골 마을 '개똥이 마을책방' 마당까지 찾아와 출판 기념 북 콘서트를 열었다. 책을 발간한 도서출판 '리잼' 안성호 대표와 마을책방을 운영하는 우창수 대표의 인연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임 감독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대표를 8년째 맡는 등 소외받는 동물에 대한 인식과 환경을 바꾸는 데 힘쓰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양평 집에서 우포까지 차를 몰고 내려온 임 감독은 "동물을 주제로 강연한 경험은 여러 번 있지만 다섯, 여섯 살 꼬마부터 80대 어르신까지 함께 있는 공간은 처음이어서 조금은 당황스럽다"면서도 어린 시절 동물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어린이를 위한 책을 쓰게 된 이유부터 차근차근 풀어 나갔다.

"어른들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게 편하기 때문에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는 편이지만, 반대로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입맛, 감각, 세계관이나 가치관은 평생을 지배하는 것 같아 어린이에게 초점을 두게 됐습니다. 아이들은 무언가 이야기하면 바로바로 받아들이니까 어릴 때 교육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린이 책을 쓰는 게 마냥 쉬운 건 아니었다. 너무 잔인해도 곤란하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까지 수용 가능할까를 생각하는 수위 조절이 무엇보다 어려웠다고. 영화 촬영 틈틈이 책을 썼기 때문에 안 대표의 제안 이후에도 3~4년인가 소요됐다.

"어렸을 때 여름철이면 동네 어르신들이 커다란 나무에 개를 매달아 몽둥이찜질을 한 뒤 불에 그슬린 껍질을 솥에 끓여서 드시는 걸 목격했어요. 친구 삼아 지내던 동네 개들이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정말 슬프고 고통스러웠어요. 어린 시절 너무도 미안함을 느꼈던 그 동물 친구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동물 보호 단체 활동을 하게 됐고, 동물 보호와 생명 존중을 담은 어린이 책까지 내게 됐습니다."

이날 임 감독은 책 이야기 외에도 사람과 동물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부분에서 인간을 위해 희생되거나 이용되는 동물실험 이야기도 꺼냈다.

"전 세계에서 실험으로 희생되는 동물은 한 해 1억 마리가 넘는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약품이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동물에게 안전성 실험을 하는 거죠. 이것이 질병 치료나 예방 등 새로운 의약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면 모를까, 굳이 긴박하지 않은 샴푸 같은 헤어 제품, 화장품까지 동물 실험을 한다는 건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도 '동물실험금지법'을 부분 발효했는데 소비자들도 이를 알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개 식용 문제로도 이어졌다. 이날따라 연로한 어르신 청중이 많은 게 신경 쓰였던지 임 감독은 "동물을 먹는 문제라고 말씀드려서 반발하실 어르신이 계실 줄 모르겠지만 지금은 예전과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며 "못 먹고 못 살던 그 시절엔 개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한다든가 더위를 이겨낸다고 했다면 지금은 먹을거리도 다양해지고, 냉방도 잘 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식용 개농장 실태를 안다면 차마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식용으로 키워지는 개농장의 개들은 공간이 좁아서 거의 움직이기조차 힘든 철창인 '뜬장'(동물의 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밑면에 구멍을 뚫은 장)에 갇혀서 평생을 살다가 도살장에 갈 때나 땅을 밟아 보는 상태로 사육된다고 임 감독은 설명했다. 이어 일부에선 소, 돼지도 마찬가지인데 왜 개만 먹지 말라고 하느냐고 되묻는 분들도 있는데 그와 관련, 임 감독은 "개는 인간과 스킨십, 우정을 나눈 친숙한 동물이라 우선 개 한 종이라도 먹지 말고, 차근차근 가짓수를 줄이는 게 보편적인 윤리에 합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물원 존폐에 대한 견해는 한 고교생의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다. 원래 꿈이 사육사였다는 고교 2년 김민성 학생은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동물원의 현실을 알게 됐고, 동물원을 없애는 게 맞는 건지, 동물원 환경을 개선해야 옳은 건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임 감독은 "동물원이 지어진 건 인간 편의를 위해서였고, 먼 거리를 쉽게 이동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지어진 시설"이라면서 "오랑우탄만 해도 우거진 밀림에서 하루 40~50㎞를 움직였지만 동물원에선 1㎞ 미만, 돌고래도 하루 수십 ㎞를 헤엄치다가 아주 조그만 수족관에서 살고, 물과 진흙 속에서 살아야 할 코끼리는 시멘트 바닥과 벽면에 갇혀 습성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야생에서 살아야 할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분리된 만큼, 두 단계로 나눠서 동물원에서 태어난 동물들을 위한 환경 개선과 동물 학대로 문제가 된 동물 쇼 등은 점차 폐지해 나가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임 감독은 육식을 줄이는 문제와 동물도 사람처럼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다. "육식을 줄이는 문제는 단순히 동물뿐 아니라 옥수수나 콩 같은 동물 사료용 식물을 많이 키우기 위해 GMO 종자를 심는 문제와도 연관됩니다. GMO를 먹고 자란 동물이 우리의 유전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우리의 대기와 토양, 강물을 오염시키는 등 대규모 축산, 즉 너무 다량으로 싸게 공급되는 시스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은 단순히 우리의 놀잇감이나 먹거리가 아니라 이 지구를 함께 사용하고, 우리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고 진화해 온 존재임을 명심하고 지금보다는 나은 상태로 사육되기를 바랍니다."

북 콘서트에서 축하 공연 중인 '우창수와 개똥이 어린이 예술단'.
한편 이날 북 콘서트에는 임 감독과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외에도 '우창수와 개똥이 어린이 예술단'의 축하 공연, '미안해, 고마워'(임순례 제작) 영화 상영회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임 감독 강연을 들은 주매마을 김세은(14) 양은 "집에서 키우는 개 2마리를 어른들께 이야기해 풀어 달라고 해야겠다"고 말했다. 김갑순(84) 어르신은 "감독이 다 맞는 말을 한다"면서도 열여덟 나이에 창녕읍에서 마지막으로 영화를 본 뒤 66년 만에 영화를 보는 거여서 "그게 더 기대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경남 창녕/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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