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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영 교수 인터뷰 _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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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2-13 18:25 조회1,5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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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http://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377.html

빗물 받아 쓰는 게 민주주의 [2014.02.17 제998호]
[정연순의 말하자면] ‘우리(雨里) 대통령’ 한무영 서울대 공대 교수 _정연순 변호사, 녹취 전다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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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물의 행성이라고 하죠. 하지만 인간이 마실 수 있는 물은 담수이고, 이미 70억 명을 넘어선 지구촌 인구가 필요로 하는 물의 양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끝없는 개발 또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목마르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담수를 저장·활용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이른바 4대강 개발사업이 큰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목마른 지구. 묘안은 없을까요? 10년 전부터 빗물이 해법이라는 주장을 펴며 활발한 활동을 벌여오신 분이 있습니다. 흔히 ‘빗물박사’라고 불리는 한무영 서울대 공대 교수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기 시작했습니다.

빗물은 맛있다

-많이 받은 질문이겠지만, 빗물을 정말 먹을 수 있나요.
=물론이죠. 과학적으로 빗물이 증류수에 제일 가까워요. 염도도 낮고요. 상식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물이 어디서 왔을까요. 서울의 수돗물은 팔당에서 왔겠죠. 비가 오고 그게 강으로 내려오면서 이것저것 오염된 것을 처리해서 여기까지 끌고 온 거예요. 마일리지가 굉장히 긴 거예요.

-마일리지란 사람에게 물이 도달하기까지의 거리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죠. 설악산에서 흘러 내려와 강물이 됐다가 처리돼 사람에게 오는 물은 마일리지가 길죠. 마일리지가 긴 물은 당연히 그만큼 많이 오염되지요. 빗물이나 강물이나 원산지는 하늘이거든요. 빗물에는 새똥이나 황사 같은 것은 묻어 있겠지만 공장 폐수나 녹조가 없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어요. ‘빗물도 먹을 수 있나’가 아니라 ‘빗물과 강물 중 어느 쪽이 처리 비용이 더 드는가’ 이렇게 물으면 답은 명백해요.

-맛도 있나요. (웃음)
=얼마 전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빗물, 수돗물, 병에 파는 지하수, 세 가지를 먹어보는 실험을 했어요. 가장 맛있는 물로 빗물을 선택한 사람이 60% 이상이었어요. 빗물이 맛도 있고, 마일리지가 짧고, 최고의 물이라는 거죠. 저는 빗물로 커피도 끓여 먹어요.

-왜 이렇게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을 그동안 쓰지 않았을까요.
=우리나라는 고조선 때부터 치수의 개념으로 빗물을 적극 관리했어요. 둠벙(웅덩이)이나 저수지도 그렇고, 조선시대 측우기도 그런 전통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상하수도, 즉 물을 끌어와 집까지 가져다주는 설비가 들어오죠. 물론 혁신적인 거죠. 질병을 없애고 인간의 수명을 30년 정도 늘리기도 했고요. 대신 빗물을 잊었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데, 반대로 사람이 물을 끌어서 쓰는 게 훨씬 더 선진적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거죠. 하지만 이제는 기후변화와 물 부족으로 도저히 그것만으로는 적절히 대응할 수 없어요.

-기후변화에 빗물이 적절한 대안이라는 거군요.
=상하수도 시설은 대규모 집중형 시설이에요. 40인승 버스를 생각해보면 쉽죠. 버스 한 대를 마련해놨어요. 그런데 어쩌다 딱 한 사람이 더 왔어요. 그렇다고 버스 몸집을 늘릴 수는 없죠. 빗물을 이용한 시스템이 그 한 사람을 위한 거예요. 그 외에도 빗물이 주는 장점이 많이 있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집중형 시설만 지어왔지만 아직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한 아프리카나 북한 같은 곳은 상하수도와 빗물관리 시스템 두 가지를 함께 하는 게 훨씬 좋아요.

3일 쓰고 마는 시설보다 철학

-빗물의 가치라면 어떤 게 더 있을까요.
=빗물 관리는 재해를 방지하는 목적도 있어요. 요즘 여름이면 침수로 난리인데, 동네 모든 곳에 저마다 빗물탱크를 만들고, 모든 집에 와플식 저류장치를 만들면 해결 가능해요. 큰 재해가 발생했을 때, 예를 들어 지진이 나면 땅이 뒤틀리고 땅속의 파이프도 뒤틀려 먹을 물이 없게 되죠. 그때 각자 모아놓은 빗물 1t의 가치는 비상 식수원으로서 단순히 돈으로 따질 수가 없어요.
최근 몇 년간 비가 좀 많이 내리면 침수 피해가 연이어 나고 있는데, 그 해결책으로 지하에 대형 빗물저장시설을 만든다는 뉴스가 생각났습니다. 그런 방법이 괜찮은지도 궁금해집니다.

-도시 바닥에 대형 저류조나 터널을 만드는 것은 어떤가요.
=일단 저류조를 만들어서 쓰는 날이 얼마나 될까요. 한 3일일걸요. 집중형 시설은 조금이라도 망가지면 전체를 못 써요.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건 빗물에 대한 철학이에요. ‘빗물이 돈인가 쓰레기인가’에서 ‘쓰레기니까 버리자’, 이런 거예요. 너도나도 빗물이 싫어서 길가로 몰아 버려놓고 침수를 따지냐는 거죠. 평지붕이라면 옥상에 만들고, 없으면 홈통에다 빗물저금통을 만들고, 주차장에 빗물저류조를 만들면 되거든요. 그렇게 조금씩 하면 한꺼번에 흘러내리는 양이 적어서 침수 방지가 돼요. 모아놓은 빗물로 화분에 물도 주고 꽃도 가꾸고요. 저마다 빗물저금통을 예쁘게 만들어도 보고요. 도시가 달라져요.

-훨씬 커다란 수조인 4대강 댐은 어떤가요.
=하늘에서 보면 이래요. (손바닥을 펼치면서) 이게 대한민국이면 손금이 4대강이죠. 비는 손바닥에 다 오거든요. 이걸 손금 안에만 가둬놓고 물이 부족하면 끌어다주겠다는 거예요. 이걸 1차원적 관리라고 해요. 2차원적 관리는 떨어진 그 자리에서 받자는 거예요. 1차원적 생각은 우리 집만 침수되지 않으면 된다는 것에서 나오지만, 2차원적 관리는 나도 좋고 내 아래쪽의 사람들도 홍수 방지가 되니 다 좋은 거예요. 나아가 3차원적 관리는, 빗물을 받아뒀다가 조금씩 땅으로 침투시켜 다시 지하수로 돌려주는 것으로 ‘자연을 위해서’예요. 그다음 4차원적 물 관리는 우리 후손을 생각하는 거예요. 유지·관리비가 많이 들어가는 건 다음 세대에 부담을 주거든요. 4대강의 개념은 1차원적 관리예요.

-‘에너지 민주화’가 큰 화두인 세상이에요. 지역에서 대체에너지를 생산해 쓰고 나눠주는 분산형 에너지 관리 시스템인데요, 빗물 관리가 그 핵심에서 닮아 있어요.
=댐을 100년 만의 홍수 수위에 맞춰 지었더니 200년 만의 홍수가 나거든요. 아무리 해도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요. 그걸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너도나도 자기 능력껏 할당량만큼 책임을 다하는 것이에요. ‘빗물이 싸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모두, 즉 나·이웃·자연·후세대가 행복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고 말하죠.

-이 좋은 것을 왜 안 할까요.
=이게 다 좋은데, 미국에서 돈 들여 공부하고 왔고 돈 벌어야 하는데 이건 너무 쉬워서 돈이 되지 않아요. 통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요. (웃음)

이 좋은 것을 안 하는 이유, 너무 싸서

-서울시와는 여러 사업을 함께 하지 않았나요, 빗물주치의 제도도 생겼던데요.
=위촉장은 받았는데 개점휴업 상태예요. (웃음) 지금 서울대 정문에도 큰 저류조를 만들면서 돈을 많이 쓰고 있거든요. 박원순 시장이 물순환도시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지난해에 물을 버리는 데 4700억원을 썼어요. 저류조 만들고 하수도관 키우는 데요. 빗물 모으는 데 쓴 돈은 10억원이었어요. 물순환도시를 만든다고 하는데, 균형이 맞아야 할 것 아닌가요. 그 밖에 경기도 수원시, 경남 고성군과 빗물 관리에 관한 여러 사업을 진행했는데 아직 우리 실생활에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한 듯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만약 대통령이 되어 돈을 쓸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일단 동네마다 연못을 만들 거예요.

-연못 물도 먹을 수 있나요.
=처리하면 먹죠. 더 지저분한 낙동강 물도 처리해서 먹는데. (웃음) 정원을 만들 때도 볼록하게 만들지 않고 오목하게 만들어요. 물이 그 안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그래서 땅속을 저류조로 만들자, 자연적으로. 옛날에는 어디든 파면 물이 나왔잖아요. 그렇게 자연 저류조를 만들면 벽도 지붕도 없는 좋은 물탱크가 잔뜩 생기는 거니 자연과 소통도 되고 좋죠. 지붕이 넓은 곳은 받아서 쓰기도 하고요.

-도시에는 연못을 못 만들 텐데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새로 짓는 건물은 지하에 한 층을 더 파게 하고 대신 용적률 등 인센티브를 주고요, 기존 건물은 빗물저금통과 오목형 정원 등을 만들고 빗물이 땅속에 쉽게 침투하도록 만들어주는 거예요. 게다가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평지인 도쿄보다 쉬워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까, 위치에너지를 이용해주면 에너지도 많이 절감되죠.

-그러면 공약을 빗물 대통령으로? (웃음)
=빗물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雨里) 대통령으로요. ‘우리’(雨里), 외국인에게는 ‘Rain City’요. 물을 큰 강에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신 선물을 잘 활용하면 된다, 이렇게 하는 거죠.

-아직도 사람들은 뭣하러 빗물 받으려고 복잡하게 설계하느냐 이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사회적 책임’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드린 4차원 관리, 나뿐 아니라 후손까지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거죠.

-빗물 관리가 세계적으로도 꽤 진전돼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가요.
=사실 빗물 관리가 교과서에 안 나와요. 왜 그런지 생각해봤더니 교과서가 외국 것을 다 번역한 거고 아까 말한 선진화 개념을 깔고 있는 거죠. 유럽이나 식민주의자들의 마음속에 지속 가능한 것, 있는 것을 모아서 같이 잘 쓰자는 생각이 없었던 거 같아요. 외국을 보면 우리나라처럼 강우량이 들쑥날쑥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름에 홍수, 봄엔 가뭄을 매년 겪잖아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 세종대왕께서 측우기를 만들어 빗물 관리를 한 거죠. 연구하다보니 그런 전통이 있는 걸 알았어요. ‘수토불이.’ 우리 땅엔 우리의 물 관리가 필요하죠.

눈물도 모으는 일을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지원이 또 있나요.
=법이 필요해요. ‘물의 재이용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있지만 물이 부족하니까 빗물을 받아서 화장실 용수로 쓰자는 정도예요. 단지 물 부족뿐 아니라 재해 방지, 두 가지 목적으로 빗물을 바라보는 통합된 시각을 가진 법이 필요해요. 지붕 위만 아니라 전체를 관리하고요. 개별적 애국심이나 환경보호자들의 자발적 의지에만 호소하면 안 되죠. 사회권 중에서도 물은 가장 중요한 권리라고 해요.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를 굉장히 강조하죠.

-국제 봉사활동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어요.
=벌써 8년째인데, 학생들과 함께 베트남에 가서 빗물 모으는 시설을 만들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농활이 아니라 ‘비활’이라고 부르는데, 하노이의 농촌 지역은 지하수가 독극물인 비소에 오염돼 있는데도 대안이 없어서 그걸 먹고 있어요. 거기에도 지붕은 다 있으니까 집수시설과 연결해 빗물을 모아서 먹으면 된다는 거죠.

-주민들이 잘 사용하던가요.
=처음에는 남들처럼 설비를 만들어놓고 폼 나게 사진만 찍고 왔어요. 그런데 그 뒤에 다 망가지고 방치됐다고 하더라고요.

-왜요.
=잘 못 만들어서 그렇죠. 그 사람들의 조건이 아니라 내가 좋다는 것만 생각했으니까요. 필터도 독일 것을 수입해서 가져가고, 저장조도 가져갔죠. 좋은 자재를 갖고 가서 설치해줬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그게 망가지면 그 사람들이 고칠 수가 없어요. 지금은 돈만 가져가요. 현지 자재와 인력을 이용해서 만들고 오면 그다음부터는 그 사람들 스스로 할 수 있어요. 학생들과 주민이 함께 만들고 그 위에 동네 아이들과 함께 연꽃도 그려요. 정말 좋아들 하죠. 이제는 빗물만 모으는 게 아니라 눈물도 모아요. 감동의 눈물요.

-듣다보니 ‘생각의 혁명’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게 쉬우면서도 제일 쉽지가 않아요. 어떻게 해서 이 길을 걸어오셨나요.
=상하수도 전문가로서 학자로서 열심히 살아왔죠. 2003년 논문이 미국 대학원 교재에 실리고 그 뒤 최우수논문상을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지만, 사실 전문가의 글이라는 게 읽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뭔가 여러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10여 년 전에 우연찮게 빗물 활용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빗물을 받아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였는데 자꾸 캐다보니까 홍수, 건축, 도시, 나아가 유엔의 목표까지 이르렀어요. 물 혁명, 빗물 혁명을 주도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까지요.

한국은 옛날부터 빗물 관리 챔피언

한 교수는 2001년 빗물연구센터를 연 뒤 지난 10년간 강연·저술·설계 등 활발히 활동해왔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국제환경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5년간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요.
=법제화가 제일 필요해요. 우리나라가 아주 옛날부터 빗물 관리 챔피언이었으니까 그 전통을 살리고 이걸 체계화해서 전세계에 꼭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학자니까 당연히 빗물 관리의 이점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더욱 노력해야죠. 그냥 좋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온도는 몇℃ 내려갔는지, 홍수가 얼마나 방지됐는지 등을 수치로 제시하고 설득하는 거죠.

-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의무가 함께 가는 것인데, 빗물을 대하는 태도가 그런 것 같아요.
각자가 자기 책임만큼 물을 받고 쓰는 것, 이게 민주주의의 정신에 딱 맞아요.

한무영 교수와의 열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갑자기 빗물이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감염이 된 거죠. 어렸을 적 신나게 비를 맞고 돌아다니던 그 추억을 다시 찾은 것 같은 행복감도 들었습니다. 한 교수가 일하는 환경공학부 건물 옥상에는 빗물로 자라는 텃밭과 오목형 정원, 빗물저금통이 있습니다. 아직은 한창 겨울이지만 빗물을 받고 푸름이 한껏 자라나는 여름날, 독자들도 한번 방문해보실 것을 꼭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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